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양 소년 살인사건 (문단 편집) === 밝혀지지 않은 진실 === [[일본제국 경찰]]은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는 한편 박석산에서 발견된 변사체의 사인과 신원에 대해 수사를 시작했지만 범인은커녕 시신의 신원조차 밝혀내지 못했다. 무엇보다 책임은 시신에 대한 신원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유가족에게 시신을 내 준 일본제국 경찰에게 있었다. 경찰은 수사를 빨리 종결하기 위해 유족에게 아들의 시신이 맞는지의 여부를 다그치듯 물었고[* 당시 조선인들이 느꼈을 [[일본제국 경찰]]의 위세를 생각해 보자. 거기다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심리적 위축까지 생각하면 [[답정너|그들의 의도대로 대답할 수밖에]] 없었을 것이다. 당시 조선인들은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"울면 순사가 잡아간다"고 야단을 쳤다. 이런 드립은 [[8.15 광복]] 후에도 남아 있다.] 유가족이 "창수의 인상착의가 평소 입던 옷과 다르다"고 대답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류품으로 발견된 옷을 시신과 함께 넘겨 버리는 짓을 저질렀다. 경찰이 유류품을 증거물로 보관만 했더라도 사건이 미궁으로 빠지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었겠지만 시신과 함께 유족에게 넘겨 버린 바람에 그대로 시신과 함께 매장되어 더이상 찾을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. 무엇보다도 [[1930년대]]에는 주민등록 시스템이 발달되어 있지 않았고 [age(1930-04-29)]년이 지난 지금은 관련자들도 모두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이 높아 현재로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.[* 참고로 동시대 [[미국]]에서 신원불명 시신의 신원을 밝혀내는 방법은 [[치과]]기록과 [[지문]]이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